12/13 삼겹살 수육
11일과 12일은 건너뛰었다. 왜 건너뛰었냐면 진짜로 한 게 없다. 오랜만에 진짜 진짜로 아무것도 안 하는 삶을 살고 있다. 미국 생활 중 아무리 그래도 밥 하기 & 설거지 정도는 거의 매일 척척 해뒀던 거 같은데 그것도 미루고 대충 때우고 했다. 약간 이곳 살림살이나 그런 걸 정리해 가는 과정 중에 있어서 뭘 일을 벌일 마음이 잘 안 드는 그런 감성이 있다.

그래도 이럴 때는 게임과 유튜브가 부쩍 재밌어진다는 장점이 있는데, 그 장점을 십분 활용하고 즐기면 그런대로 좋은 점이 있는 것 같다.
오늘도 원래는 비슷하게 흘러갔을 거 같은데, 일부러 안 그러려고 지뢰를 심어놨다.
전날에 냉동실의 삼겹살을 냉장실로 빼서 해동해 둔 것이다.
이러면 저걸 안 먹을 수도 없고 재냉동을 할 수도 없고 반드시 저거로 뭔가를 해 먹어야 한다. ㅋㅋ
삼겹살은 저번 생일파티 할 때 양이 넘칠 것 같아 손질할 때 미추리 부분을 킵해뒀었어서 그걸 두덩어리 빼뒀다. 원래는 냉을 살짝 먹었을 때 최대한 얇게 썰어서 팬에 싹 구워다 밥에 장아찌에 상추싸서 먹으려 했다.
근데 뭔가 그게 오히려 더 밖에 나가서 기름튀기고 귀찮아서 급 수육으로 선회했다. 약간 부드러움과 탱글함의 경계에 있는 그런 수육이 먹고 싶었다. 오히려 수육 같은 음식이 방 안에 있는 전기 스토브에 물 올려두고 컴퓨터 하면서 기다리면 되기 때문에 간단하다. 환기만 잘 하면 따로 더 청소할 것도 없고.
냄비에 물을 적당히 고기 잠기겠다 싶게 붓고, 간장은 한컵 좀 넘게 느낌, 맛술을 조금 넣고 냉장고의 이런저런 채소들을 다 넣는다. 파는 좀 귀하니 넣지 말고, 양파 한개를 손으로 대충 쪼개서 넣고, 고추도 둘로 쪼개서, 마늘 몇 알 껍질 안 까고 꼭지만 따서. 집에 있는 향신료 비스무레한 것들도 다 대충 털어 넣었다.
끓어오르면 고기를 넣어 뚜껑닫고 30분, 뒤집어서 15분, 불끄고 15분 뜸 들이면 완성이다. 완성된 고기를 도마에 꺼내 최대한 얇게 썬다. 수육은 얇으면 얇을수록 맛있다. 사이드로 로메인 상추 한포기와 쌈장을 준비해 둔다. 그냥 도마가 있는 주방에 서서 손으로 수육을 집어서 입에 넣고, 쌈장 찍어서 넣고, 쌈장 찍어 상추에 올려 싸 먹고.. 하다 보면 배달수육 중~대짜정도는 되어 보이는 양이 금세 사라져 있다.

김치가 없는게 아쉽긴 했다. 사실 겉절이 같은 느낌은 어케어케 하면 생활 초기부터 만드는 습관을 들일 만도 했던 것 같은데, 너무 늦게 떠올려서 아쉽긴 하다. 그래도 쌈장과 쌈채소가 잘 준비가 되어서 되게 든든하게 한국인력을 잘 채웠다. 오랜만에 제대로 밥 싹 해먹고 설거지까지 끝내면서 삶의 리듬이 다시 뛰기 시작한 것도 같다. 지금 이렇게 블로그도 다시 밀린 거 써내려가고도 있고. 아무튼 이제 잘 마무리하고 여행 돌고 한국에 가야지 싶다.